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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그 날을 기억하다 [서울의 봄]

by 유조니 2023.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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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212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인 서울의 봄이 화재입니다.

오늘 기준 누적관객수 755만명을 동원하며, 천만 관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극중 소재가된 1212사태.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는데, 오늘은 1212사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12사태

 

1212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필두로 노태우 등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바란입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됐던 군대 내의 불법 사조직으로 1212군사 반란을 주도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1979년 10월26일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갈등이 첨예하였습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한 신군부는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1026사건에 연관되어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합니다.

 

전두환 정승화

 

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은 계획했던 반란을 치밀하게 실천합니다. 보안사령관인 그였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는 그의 손에 있었으며 어떠한 정보도 세어나가지 않았습니다. 먼저 허삼수, 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대 병력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하였습니다.

 

김진기 정병주 장태완

 

같은시간 전두환은 1212반란의 방해가되는 3명의 인물을 묶어 둡니다.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은 전두환의 초청으로 연희동 요정에 초대되었습니다. 

세 명 모두 12월12일 정승화 체포 시 우호적이지 않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뒤 늦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체포된 사실을 알고 대응을 했으나 이미 전두환에게 무력화 된 뒤였습니다.

 

최규하 대통령

 

이날의 일련의 사건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최규하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재가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정승화의 연행을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최규하 대통령은 13일 새벽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재가하였습니다.

 

 

1212반란의 주역들

 

1212사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212반란의 순간을 가상의 인물로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과 분노가 차올랐지만 역사를 바로 알고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도 좋은 정보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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